일상의 수다.

속삭임 / 이사벨라

이사벨라의 날개 2021. 6. 19. 08:27



속삭임 / 이사벨라

긴 시간 외면했던 몸이 반기를 들었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몸이다. 마음가는 길에 신체는 자동으로 따라오는 줄 알았다. 하고자 작정하면 못 할 일이 무엇이냐 하면서 자만했었다. 그러고보면 나는 참 교만한 사람이다. 살아오는 동안 뜻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걸 경험했으면서도 여전히 교만하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이만큼이나마 온 것이 내 공이라고 생각했다. 천둥벌거숭이가 사람 꼴을 갖추기까지 남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아주 열심히 살았다.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좀 더 나은 하루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내 코가 석자여도 남들을 도우면서 살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남들이 나를 도운 것이라는 걸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짐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지 않았을테니까.

병원 대기실에서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면서 한없이 작아진다. 타인의 손에 맡겨진 신체는 '아야' 소리도 못하고 시키는대로 따라한다. 좌로, 우로, 정면으로 불빛이 비추는 방향을 바라보며 시린 눈에 힘을 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힌다. 이 눈물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일까? 안으로만 잦아들던 눈물이 불빛을 따라 나오며 반짝인다. 처음 만나는 타인에게 나를 맡기며 속삭인다. 지극히 낮은 자세로, 도와달라고......

#속삭임 #이사벨라 #바람결 #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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