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수다.

길고 긴 밤. / 이사벨라.

이사벨라의 날개 2020. 7. 29. 06:46



길고 긴 밤. / 이사벨라.

한 여름, 밤새 비가 내리는 날이면 작은 방에 떠돌던 퀴퀴하고 구린 냄새가 코 끝을 스치곤 합니다. 긴 세월 술로만 지내던 당신은 결국 대 소변도 못가리는 환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방 한 켠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 눈을 커다랗게 뜨고 웃는 당신을 봅니다.
웃는 얼글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퇴근하는 길에 작은 과자 하나라도 들고 들어가곤 했습니다. 나를 보면 당신의 눈은 내 손에 먼저 달라듭니다. 손에 든 먹거리를 보면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습니다. 종잡을 수 없이 수시로 화만 내던 당신이 웃는 것이 좋으면서 한 편으로 밉기도 했습니다.
진작 좀 웃어주지 싶어 가슴에 불길이 치솟을 때도 있었지요. 이불을 들쳐 두툼한 기저귀를 벗기고 새 기저귀를 채웁니다. 젖은 기저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니 낮동안의 당신 흔적이 커다란 대야에 담겨 기다리고 있네요. 하루 종일 당신 시중에 허리가 아프다는 어머니가 '네 아버지니 네가 책임지라'고 등 뒤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문득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고만 싶어지는 순간입니다.
모두 잠든 밤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오래 전 그 밤의 냄새를 지웁니다. 마음 둘 곳 없어 외롭고 슬프던 어린 나를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그 밤들은 이제 옛일이 되었는데 왜 이리 스산한지 모르겠습니다. 내리는 빗방울을 핑계삼아 괜스레 울컥해지는 나를 추스립니다. 다 끝난 일이라고 속삭이며 커피를 마시는데 밤이 참 길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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