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수다.

취중진담. / 이사벨라.

이사벨라의 날개 2020. 7. 31. 06:59



취중진담. / 이사벨라.

'누나 미안해 내가 술에 취해서 실수한거야.' 실수라 과연 그럴까? 동생이 슬에 취해서 실수한 것이면 좋겠다. 하지만 난 그게 실수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동생의 한 마디가 그동안 내게 요구만 하던 사람들의 태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아들이라고 보살핌 받는 데 익숙한 동생은 좋은 것은 제 덕이고 나쁜 것은 전부 남 탓을 한다.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 온 나에게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이다.
끊임없이 헤매는 것이 안쓰러워 애는 썼지만 끝내 알콜중독자가 되어 버린 아이다. 그런 동생이 얼마 전 제법 큰 돈을 해달라기에 나도 병원 치료하느라 힘들다고 했더니 아무 말 없이 갔다가 저녁 무렵 술에 취해 찾아와 소리를 지른다. '누나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피 한 방울 안 섞인 애들은 데려다 키우면서 나는 왜 안 돌봐 주는데?' 순간 난 깨달았다. 내가 말없이 인내하며 지냈던 날들이 누군가에겐 만만한 밥이었다는 사실을....
그거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하지 않고 당연한듯 요구만 하던 주변인들의 태도는 쟨 그래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쟨 속이 없어서 남의 자식도 키우는 아이니 이정도 요구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한 것은 바로 나였던 것이다. 내가 아무 말 없이 하다 보면 그들도 언젠가는 마음을 알아주리라 여겼는데 실수였다. 말을 했어야만 했다. 지금 힘들어, 나 좀 도와줄래?, 위로가 필요해, 힘이 되어주면 좋겠어 등등 그때마다 말을 했어야만 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난 그 날 동생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하자. 다시는 내게 어떤 요구도 하지 마. 따듯한 밥이 먹고 싶고 가족의 정이 그리우면 와도 돼. 하지만 그게 다야. 난 네 엄마가 아니야.' 입만 벌리고 있는 동생을 뒤로 하고 방문을 닫고 나니 그제야 머리가 맑아진다. 그 후로 난 거절하는 법을 익히고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너무 늦게 알고 많이 서툴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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