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수다.

그 해 여름 소나기. (3) / 이사벨라.

이사벨라의 날개 2020. 7. 22. 08:09

그 해 여름 소나기. (3) / 이사벨라.

비가 오려는지 선풍기에서 습한 바람이 밀려 나옵니다. 정신없이 박음질을 하면서도 눈은 수시로 시계를 바라 봅니다. 영영 울리지 않을 것 같던 작업 끝 벨소리가 마침내 들려 옵니다. 요즘 뭐가 그리 바쁘냐고 묻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공장 문을 나섭니다. 들리지 않을 걸 알면서 '나 지금 가요' 신호를 보내며 버스에 오릅니다. 굼벵이처럼 느린 버스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종점에 내립니다. '이제 와요? 오늘도 늦었네요.' 그가 내 신호를 알아 들었나 봅니다.
짧은 곱습머리, 반짝이는 눈동자, 까맣고 긴 속눈썹, 알맞게 자리한 코, 야무진 입술. 하루 종일 보고 싶어 가슴 조리던 얼굴이 눈 앞에 있어 놀랍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길기만 했던 낮 시간은 산동네 지붕 너머로 몸을 숨기고 달빛마저 보이지 않는 밤이 숨을 내쉽니다. 이전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 송이 꽃이 되어 시들했던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선풍기에서 맴돌던 습한 바람이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합니다. 하루종일 느리기만 하던 시계바늘이 달음박질을 합니다. 말없이 씌어주는 우산 속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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