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나 집 방 한 칸을 빌려 들어 온 뒤로 짜증만 나던 동네다. 지지리 궁상인 사람들이 모여 밤낮없이 악다구니 쓰는 게 이해할 수 없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 곁에 새 어머니와 낯선 아이가 동생이라고 들어온 뒤 집을 나왔다. 딱히 새 가족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엄마 냄새가 지워져 가는 것이 싫어서다. 아이가 아니기에 내색은 못하지만 엄마의 자리를 차지한 낯선 여자에게 어머니라는 말은 안 나온다. 결국 돌아갈 곳이 없어져 공군에 입대시험을 치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죽이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죽어가던 시간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밤거리에서 그녀를 처음 만난 날 오랜만에 엄마 꿈을 꾸었다. 늘 강하고 다부지던 엄마가 울고 있는 모습이 낯설어 말도 걸지 못하고 바라만 보던 옛 추억이 꿈에 나온 것이다. 병이 들어 노랗게 퇴색되어 가던 엄마 얼굴이 그녀의 노란 얼굴에 덧씌어진다. 눈만 마주치면 웃는 그녀의 눈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백열등 불빛 아래 노랗게 시들어가는 그녀가 뙤약볕을 맞으며 밭일을 하던 엄마를 생각하게 한다. 늦은 밤 버스에서 내리는 그녀가 나를 보고 웃는다. 노란 얼굴의 그녀가, 아니 너무 보고 싶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엄마가 비를 맞으며 내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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