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리 말하지만 난 구제불능 바보야. 봄이 되어야 꽃망울 터지는 걸 알면서 겨울내내 매달여 있으니 말이야. 사실 고백하자면 예전엔 나도 너처럼 사람이었어. 넌 상상이 안된다고 하겠지만 이건 한치 거짓 없는 진실이야. 미리 얘기했지만 내가 바보이기는 해도 거짓말쟁이는 아니거든.
오래 전, 내가 사람이었을 때 한 사람을 사랑했어. 너무 사랑해서 구속하고, 질투하고, 끊임없이 채근하곤 했지. 어느 날 그가 지쳐 나가 떨어질 때까지 그를 괴롭혔어. 물론 본의는 아니었어. 단지 그의 눈길이 닿는 것마다 질투가 나서 그랬을 뿐이야. 그는 내 억지를 대부분 받아 넘겼어. 한 가지 일만 빼고 말이야. 다시 생각해도 그건 실수가 분명해.
그는 날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하던 일들을 여전히 잘 해나가고 있었지. 난 그게 이해할 수 없었어. 사랑이 맞는지 의심하면서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어. 연꽃을 좋아하는 그는 틈만나면 그 곳에 머물렀어. 처음엔 그가 좋아하는 것이니 당연히 나도 좋아했지. 질투심에 눈이 멀기 전까지는 함께 연꽃을 즐겼어. 어느 날 밤에 눈을 뜨니 옆에 있어야 할 그가 없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 난 정말이지 연꽃을 싫어하지 않았어.
그를 찾아 사방팔방 돌아다녔어. 그는 거기에 있었어. 나를 혼자 버려두고 연꽃과 함께 있는 그를 본 순간 내 눈에 불꽃이 튀었어. 난 미친듯이 달려가 연꽃을 망가뜨리기 시작했어. 그의 만류에도 멈추지 않고 말이야. 결국 연꽃은 처참한 몰골로 나뒹굴고 그는 망연히 서 있더군. 그리고 아주 슬픈 눈으로 나에게 말했어. '이제 그만하자. 다시는 널 보고 싶지 않아.' 그렇게 그는 날 떠나갔어.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자책하며 다음 생이라도 그가 아끼는 연꽃이 되게 해달라고 끝없이 빌고 빌었어. 마침내 바라던 연꽃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바라보는 아래가 아니라 높은 나무가지에 매달린 연꽃으로 피어나고 말았어. 낮게 핀 연꽃을 보는 그에게 말하려면 꽃으로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 너도 알다시피 꽃은 순식간에 피고 지니까. 어쩔 수 없이 몽우리로라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거야. 여전히 난 바보니까.
#고백 #이사벨라 #바람결 #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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